중학교 2학년 때 스윙 걸즈 (2004)를 봤다. 보고 나서 부모님을 졸랐고, 얼마 뒤 트럼펫이 생겼다. 개인 강습까지 받았다. 하지만 같은 소절을 반복해서 부는 일을 견디지 못했다. 악기는 곧 창고로 들어갔다.
악기는 놓았지만 음악은 놓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는 무대에 서는 쪽이 아니라 뒤에서 만드는 쪽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라디오헤드를 들려줬다. 처음엔 이런 것도 음악인가 싶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였다. 나도 좋아하고 싶었다. 좋아질 때까지 들었다.
그러다 정말로 좋아져 버렸다. 취향 같은 건 없었다.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낯선 것 앞에서는 그때처럼 한다. 익숙해질 때까지 들여다본다.
진로는 클래식 작곡으로 잡았다. 더 끌린 쪽은 대중음악이었지만 부모님이 보수적이셨고, 나는 적당히 타협했다. 타협한 열정은 멀리 가지 못했다.
다들 대학에 가던 해에 나는 대입을 접었다. 서울로 올라가 감정평가사 공부를 시작했다가 금방 흥미를 잃었고, 그다음은 먹고살기 위한 아르바이트였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대학은 가야 했다. 다행히 공부는 재미있었다. 문과로 한 번, 이과로 한 번 시험을 보고 경북대학교 임학과에 들어갔다. 깡촌에서 자란 데다 짧은 서울살이에 환멸을 느낀 뒤라 자연 가까이 있고 싶었다. 무엇보다 음악 말고는 하고 싶은 전공이 없었다.
수업에는 끝내 정을 붙이지 못했다. 대신 밴드 동아리로 4년을 채웠다. 그때 만든 음악은 아직 남아 있다.

4학년이던 2020년, 학과 게시판에서 빅데이터 창업 경연대회 공고를 봤다. 1등 상금이 2천만 원이었다.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던 참이었다.
역대 수상작을 찾아봤다. 형편없었다. 앱은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는데도, 할 줄만 알면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구글링만으로 공부해가며 실제로 돌아가는 안드로이드 앱을 완성했다.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는 소셜 네트워크 (2010)를 보고 저커버그의 초기 스택을 그대로 따라 했다. 서류 심사는 통과했다. 그다음은 프레젠테이션의 영역이었고, 나는 아무 준비가 없었다.
상금은 받지 못했다. 대신 완전히 취해서 나왔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소프트웨어에는 잴 수 있는 지표가 수두룩했다. 머리를 굴린 만큼,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서도 없던 것을 만든다는 점은 음악과 다르지 않았다.
2021년 2월에 졸업하고 2022년 1월에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하고 싶어서 고른 자리였다. 앱 하나를 기획부터 배포까지 혼자 만들었다.
회사가 기울 무렵에는 직접 일감을 따와야 했다. 그때 만난 클라이언트가 회사를 나온 뒤에도 다시 연락을 줬다. 그렇게 프리랜서가 됐다.
공유 오피스에서 만난 대표가 일을 맡겼고, 그 일을 함께한 디자이너가 또 다른 사람을 소개했다. 연결이 연결을 불렀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내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줄지 않았다. 틈틈이 앱을 몇 개 내놓았다. 잘된 것도 있고 망한 것도 많다. 그중 하나는 결국 작곡 앱이었다. 돌아가는 자리는 늘 그쪽이었다.
개발을 시작한 지 여섯 해, 일로 삼은 지는 다섯 해가 됐다. 그사이 결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났다.

육아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재즈 피아노를 배운다. 반복이 싫어 트럼펫을 창고에 넣었던 아이가 이제 와 스케일을 친다. 매일 같은 자리를.